고발기사

늑장대처가 곰 죽음 불러

은쉬리 2006. 6. 23. 10:55

 

자신의 실체를 놓고 의견만 분분할 뿐 치료를 등한시하고 있는 인간들을 향해 애처로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기관 늑장 대처가 곰 죽음 불러 2006-06-23 17:11
반달가슴곰 이냐 아니냐 의견만 분분
야생동물보호협회 “선조치 후보고 필요”
 
20여년 동안 사육 중이던 ‘돌이’란 곰(본보 23일자 10면 보도)이 주인을 잃은 후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비좁은 철장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숨져 곰 주인 부인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윤종성 (사)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춘천지부장과 본지 취재진은 지난 20일 김모(곰 주인 고 박모씨 부인)씨가 반달가슴곰을 기증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와 춘천시 서면 서상2리 산골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씨의 집을 찾았고, 계곡아래 2평 남짓한 철장 안에서 숨쉬기조차 힘겨워 하는 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씨와 곰 주인 여동생에 따르면 심마니였던 고 박모(65)씨가 20여년 전 설악산에서 올무에 걸려 왼쪽 앞다리가 절단돼 발버둥치고 있는 아기 곰 한마리를 구조해와 “아주 귀한 곰이야. 반달가슴곰이다”란 말을 하면서 애지중지 사육해 왔다.

 

하지만 주위에서 박씨를 야생동물 불법포획 및 사육을 이유로 사법기관에 고발, 검찰이 박씨를 검거하려 하자 박씨는 3년 동안 도피생활을 했고, 언론매체에서 ‘왼쪽 다리 없는 반달가슴곰 행방과 박씨의 행적’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톱뉴스로 보도됐다.

 

결국, 검찰에 의해 곰의 행방이 발견돼 압수됐고 박씨는 불법포획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도피 3년만에 자수, 재판을 받고 그 당시 벌금 600만원을 내고 정당하게 곰을 찾아 왔다고 한다.

 

취재진과 윤종성 춘천지부장은 곰의 건강상태가 매우 안좋다고 판단, 곰의 치료가 시급함을 인지하고 반달가슴곰 관련기관인 강원도와 강원대 야생동물구조센터, 문화재관리청, 수의사협회 등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반달가슴곰 여부와 이에 따른 소요비용 주체를 놓고 의견만 분분할 뿐 선뜻 나서주는 기관은 없었다.

 

강원도는 “민간인이 사육하던 곰에 대한 보조금 규정이 없어 안된다”는 뜻을 밝혔으며, 강원대 야생동물구조센터는 “개인이 의뢰하면 치료비 등을 부담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문화재관리청은 “반달가슴곰일 경우 치료비 등은 (사)수의사협회를 통해 가능하지만 반달가슴곰이 아닐 경우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지난 21일 주인 잃은 곰의 안타까운 실체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관련기관인 강원도(반달가슴곰)와 원주지방환경청(사육곰), 춘천시, 강원대 야생동물구조센터 등은 지난 22일 곰 사육장을 방문해 곰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후 치료비·먹이구입비, 보금자리 주체 등 향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곰 사육장을 방문한 전원은 곰의 건강상태가 매우 열악해 치료가 급선무라는 것에 공감을 하면서도 반달가슴곰 여부를 놓고 의견 충돌을 이어갔다.

 

원주지방환경청 자연환경과 조사팀 관계자는 “반달가슴곰은 온몸이 광택 있는 검은색이며 앞가슴에는 반달 모양의 V자형의 흰 무늬가 있다”며 “그러나 반달무늬는 개체에 따라 변이가 있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으며 드물게는 반달무늬가 없거나 희미하게 보이는 개체도 있다”고 말하면서 “흑곰 가슴에는 흰털이 절대 없다”고 못 박았다.

 

이에 반해 강원대 수의대 관계자는 “입과 머리부분 등 외형상으로 봐서는 반달가슴곰이 아니다. 아메리카 흑곰이다”라고 결론을 내리자 곰 주인의 인척은 “무슨 소리냐, 가슴에 흰털이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며 반달가슴곰임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자 그는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반달가슴곰으로 판명될 경우 매우 의미 있는 사건으로 법적문제가 발생될 수 있으니 곰 주인 등의 보호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자. 그렇지 않으면 곰 실체를 밝히는 것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해 반달가슴곰 여부에 대한 의혹을 배가시켰다.

 

결국 곰의 실체는 차후 밝히기로 결정하고 치료비와 먹이구입비 등은 원주환경청에서 부담, 치료는 강원대 야생동물구조센터, 곰 보금자리는 춘천육림공원으로 결론짓고 마무리했다.

 

그러나 곰의 치료를 위해 관련기관이 논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끝난지 3시간도 안된 오후 5시 30분, 주인 잃은 곰은 책임론을 따지기에 급급했던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숨을 거두고 말았다.

 

취재진은 곰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곰 사육장을 방문, 곰 가슴을 비눗물로 씻어서 반달 흰무늬 존재여부를 확인하는 광경을 목격했고, 취재진이 곰 가슴을 살펴본 결과 앞가슴에는 흰 털 수십개가 육안으로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김모(고 사육자 부인)씨는 “곰의 건강상태가 안좋아 기증 및 치료를 요청했을 당시 관련기관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더라면 곰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반달가슴곰 여부를 떠나서 사투를 벌이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도 무심하게 대처했던 관계기관이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행정기관의 탁상공론식 행정을 질책했다.

 

또 김씨는 “오늘이 남편이 세상을 뜬지 15일이 되는 날인데 아무래도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인간들 앞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돌이’가 애처로워 데려간 것 같다”며 “추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남편 옆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어 그는 “남편이 애착을 갖고 애지중지 기르던 곰인 만큼 평소 입버릇처럼 말했던 반달가슴곰인지를 알고 싶다”며 “남편과 곰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관계기관이 정확한 검사를 통해 ‘돌이’의 실체를 밝혀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윤종성 (사)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춘천지부장은 “곰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노고가 허사가 돼 무척 안타까울 뿐”이라며 “처음 곰의 치료를 요청했을 때 관계기관이 반달가슴곰 여부를 떠나서 동물의 생명을 중요시하는 생각만 앞섰더라도 곰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곰의 가슴에 흰 털이 수십개 있는 점으로 미뤄 김씨의 반달가슴곰이란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며 “동물의 희귀성 여부를 논하기보다는 동물도 존귀한 생명의 개체로 받아들여 위급상황시 ‘선조치 후보고’하는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주환경청 관계자는 “곰 주인 인척들의 요구에 따라 반달가슴곰 여부와 연령 등을 확인하기 위해 DNA 유전자 감식 및 혈청검사를 의뢰하겠다”며 “사체는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과로 이동해 박제화 한 뒤 보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주인을 잃은 지 15일만에 주인 곁으로 떠난 곰의 실체를 두고 반달가슴곰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김씨와 흑곰이라고 추정하는 관련기관의 결론에 대한 진위여부는 DNA 유전자 감식 결과에 따라 판가름 될 전망이다.
<춘천=권혁경 기자>
 
환경시사일보( http://www.hkilbo.com/news_view.html?id=63852&title=지방뉴스&sort=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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